사람의 삶에서 가장 귀하지만 가장 흔하고 값싸기도 한 것이 ‘사랑’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유행가에서조차 ‘사랑’이란 말은 너무나 흔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사랑’, 내가 말하는 ‘사랑’은 세상에서 유일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위해 젊은 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칩니다. 적어도 그들의 열정과 순수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나면 그것이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되긴 하지만 그렇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적어도 그때의 강렬한 열정이란 것은 한때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 오래 가고 더 숭고한 것으로 느껴지지만, 그것도 이기심이나 자기중심적인 감정으로 비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구속하거나 자기 감정을 강요하는 바람에 서로를 성장시키고 하나로 모아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라놓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말은 달콤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이를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구약의 율법 중에 첫째와 둘째가는 계명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둘 다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말입니다. 율법학자들도 여기에 대해 이견이 없었습니다. 이 계명은 무슨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성경에 분명히 적혀 있고 매일 외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후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구태여 ‘새 계명’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새 계명’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사실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는 지겨울 정도로 새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이 그것을 새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사랑을 보여줄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영광과 아들의 영광은 곧 그분이 겪으실 수난과 부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모든 이들을 위한 가장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실 것입니다. 너무나도 흔한 ‘사랑’이라는 말은 실천을 통해서만 새로워지고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아무 조건도 사심도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이 세상은 새로워질 것이며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할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 우리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 이런 것들은 출생이나 다른 무슨 외적인 것을 통해 주어지는 권리가 아닙니다. 그분의 계명, 그분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서만 살아지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예닮영성 심화길잡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