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의 마지막 주간에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되는 예수님의 수난의 길을 묵상합니다. 위의 복음 말씀은 성지주일의 수난복음 중에서도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장면, 예수님 수난의 하이라이트라고 하겠습니다. 못박혀 매달려계신 고통이 극심할 텐데도 복음은 예수님의 고통이나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태도나 말을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기보다 조롱하거나 자기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맞게 된 도둑 중 하나마저도 자기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죽음이란 모든 이에게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때입니다. 나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이의 죽음을 보면서도 우리는 삶의 진실을 마주한 것처럼 진지해집니다. 함부로 농담을 하지도 않고 가볍게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군중들은 자신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고자 오신 분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그 죽음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군중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그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들의 죄뿐 아니라 그들의 무관심과 무지에 대한 탄식을 포함합니다. 그들이 회개와 구원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미디어의 발달로 우리는 다양하고 많은 뉴스를 빠르게 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뉴스도 많습니다. 자연재해나 인간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이런 죽음을 우스갯감으로 삼는 댓글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이런 소식에 슬픔이나 분노나 연민을 갖는 마음이 무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 도움을 청하고 사회를 향해 호소하지만 아무도 귀기울여주지 않고 더 이상 저항하거나 버틸 힘이 없어 자신의 죽음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 왕따를 당하는 어린 학생들이나 해고 노동자들이나 생존권을 호소하는 다른 이들의 죽음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이어지는데도 우리는 무덤덤합니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내가 그런 처지가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만 생각하며 외면합니다. 이들의 죽음은 예수님이 매번 다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것과 같은데, 우리는 매번 그 죽음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들의 어려움과 고난과 억울함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사순시기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며 우리를 회개와 구원으로 이끌지 못할 것입니다.

-예닮영성 심화길잡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