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이 여기 저기 여러분이 계시다면 우리는 헷갈릴 뿐입니다. 내 어머니가 여러 명이고 내 아버지가 여러 명이라면 우리가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세상을 창조하신 세상의 주인이신 오로지 한분이신 하느님,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에 인간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접촉하기 시작한 사람은 아브라함이지요. 그 한 분이신 하느님은 이사악, 야곱, 요셉에게 계속 모습을 드러내시고 그들의 인생에 함께 하셨습니다. 수백년 후에 그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게 되었을 때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놀랍게도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1200여년이 지나서 베틀레헴 마굿간에서 예수라는 분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라고 여기면서 살았는데, 그를 만나볼수록 심상치 않음을 마음 깊이 느꼈습니다. 겉으로는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하나의 흠도 없이 완전하게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다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분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아니 유대교 지도자들의 농간으로 사형수가 되어서 십자가에서 억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부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부활하신 그분에 대한 소식이 오래 전부터 듣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우리도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체험을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지속적으로 부드럽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리가 새로운 생명, 하느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교회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교회 시작부터 전해 내려오던 그 사실이 내 자신 안에도 이미 확신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확신이 우리 마음에 뜨겁게 차오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는 고백이 내 입에서 저절로 터져나옵니다. 그리고 보니 성령이라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언젠가부터 나에게 들려왔습니다.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분이 절규하시던 것을 성부께서 그 현장에서 멀리 계시지 않고 그분과 함께 하셨군요. 아브라함부터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께서 그분의 아버지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내쉬셨을 때 성령께서 그분과 함께 하셨고, 그 이후로 어느 새 우리에게도 와 계시는 것을 저희가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인대장인 이방인이 알아차리기 시작해서 오늘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느님께서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셨고, 아드님께서 아버지께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신 것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모습을 감추신 채 모든 것을 성령께 맡기셨음을 알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서로를 향해서 완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통해서 한분이신 하느님이시라는 영원한 진리를 이 세상에서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너무 과분하게도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삶에 저희도 동참하도록 초대해주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요한17,3)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하느님의 신비, 삼위일체를 알도록 해주셨습니까! 더구나 죽음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을 지닌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까! 아드님을 인간으로 보내주시고, 십자가 죽음까지 겪게 하시면서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에 저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저희가 매일 매일 하느님 품 안에서 살게 해주시기에 그저 감사드릴 뿐, 저희도 불완전하게나마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는 삶을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