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갈라 1,4), “우리의 잘못 때문에”(로마 4,25), 당신 자신을 봉헌하며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의 행위로 우리는 구원되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마르 14,24),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마태 26,28), “너희를 위하여”(루가 22, 19),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마르 10,45)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함과 사랑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존재는 아버지와의 사랑 안에 일치되어 있으며, 아버지의 뜻에 대답하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요한 14, 31),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며 (요한 15, 10), 언제나 아버지를 향하고 있는(요한 16, 28) 아들 예수 안에 아버지의 모습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거룩함>과 <사랑>은 인간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무상으로 주어지는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아들 예수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인간과 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제한없는 끝없는 사랑으로 인류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십니다. 

   십자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인간을 사랑하기에 당신 자신을 넘겨준 예수님의 <자아>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빈 공간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조건없는 제한없는 사랑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공간을 통하여 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비우고, 우리를 송두리째 내어줄 때 확장되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은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뿌리박고 있으며, 인간의 개별적행위 뿐 아니라, 사회적 삶 안에서도 그 무거움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다른이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내어줄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이시다>라는 확인은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인간과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이 세상 모든 현실의 마지막 <의미>이며, <목표>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을 이해하는 방법에 혁명이 있게됩니다. 하느님은 인간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아득히 먼 어떤 존재가 아니라, 그 본성상 <사랑>이요, <생명>이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 삶에 관여하며, 우리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역사의 하느님>이십니다. 또한 여기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뒤따르게 됩니다.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면서 자신을 실현하는 존재, 자신에서부터 탈출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이웃사람에게 자신을 사랑의 선물로 개방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려 노력할 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