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자기들이 이룬 하느님의 일에 기쁘고 감격하여 피곤함이나 허기를 느끼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상하신 예수님은 이들에게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라고 지시하십니다. 몸도 쉬고 또 흥분도 좀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만두지를 않습니다. 행여 이들을 놓칠세라 육로로 달려가 먼저 그곳에 다다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이들을 측은히 여기십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많은 것들이 자신 만만하게 자기 주장을 펼칩니다. 정치인들도, 학자들도, 언론도, 법조인들도, 종교인들도, 테러리스트들도... 자신들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틀릴 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공허하게만 들립니다. 목소리가 클수록 뭔가 켕기는게, 숨기는게 있는 것 같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본심은 숨기고 만들어낸 구호를 외치며 각자의 이익을 취하는데만 몰두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이들이 자신만만하게 자기를 따르라 외치지만 혼란만을 더할 뿐입니다.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은 처지가 어떤 상황을 말하는지 아주 이해가 잘 갑니다. 그때의 그들이나 지금의 우리들이나 비슷한 목마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처지를 보시는 예수님은 ‘측은함’을 느끼십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모르고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르는 그 혼란과 절망에 헤메는 이들의 절박한 몸짓을 어느 누구보다도, 특히 그들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더 깊이 느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생명을 누려야 할 이들이 그 간절함 속에서도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 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순간, 예수님은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아버지와 일치하십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느끼는 그 사랑을 함께 느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고도 더 주고싶은 사랑,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감히 청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모두 넘치게 주는 사랑,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 사랑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떠나갑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들도, 많은 경우에 참된 길, 참된 삶, 참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갈증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에 머물다 거짓 지도자들의 허황된 약속을 따라 주님을 떠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악한 소작인들에게 자기 아들까지 내어주는 포도원 주인처럼,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어리석고 약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끝까지 내어주십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예닮영성 심화길잡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