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배가 부르면 가치관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지만 실제로 말 그대로 배가 부르면 마음과 생각이 느긋해지고 너그러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으로 배가 불러진 군중은 예수님을 더 열렬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포만감으로 너그러워진 군중들의 열광보다는 그들이 이 기적에서 표징을 보고 예수님을 믿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군중은 모세의 표징을 이야기하면서도 또 먹는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음을 위한 표징을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현세적인 만족을 기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표징을 설명하시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적 양식의 가치를 말씀하십니다. 또한 당신 자신이 영적인 양식이며 하느님 사랑의 표징임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적인 것을 추구하며 영적인 삶을 체험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더 이상 세상 양식에 연연하지 않고 그보다 더 귀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슬로우라는 심리학자는 욕구의 단계론으로 유명합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욕구에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라는 다섯 단계가 있는데,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다음 단계의 욕구를 느끼게 되고 그 때에는 더 이상 하위 단계의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픈 상황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구하지만 배가 불러지면 안전을 확보하려는 욕구를 느끼고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전하다고 느낀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원하고 다음으로는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하며, 이런 것들이 충족된 후에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훨씬 복잡한 변수가 많지만, 우리의 경험도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다음 욕구의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세상의 양식을 넘어서 영적인 양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너무나 풍족한 것이 탈인가봅니다. 생존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더 맛나고 더 고급스런 음식들이 즐비하여 만족할 줄을 모르게 합니다. 옷도, 차도, 집도 원래의 용도보다는 남의 인정과 부러움을 사기 위한 도구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더 필요하다고. 우리의 마음은 언제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를 먹이고 입히는 이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알고 하느님이 뜻하시는 바를 찾을 때,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 예닮영성 심화길잡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