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세균의 발견이라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많은 병의 원인이라는 가설을 주장하는 의사들이 수술도구를 소독하는 것 만으로 수술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리고 나서도 청결한 환경과 소독의 중요성이 상식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 위대한 발견을 통해, 그리고 세균을 죽이거나 억제할 수 있는 항생제의 발명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전이 있습니다. 항생제의 남용으로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한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 인체도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고, 우리 몸과 환경에 도움을 주는 세균들까지 소독으로 죽어서 몸과 환경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심한 알러지에 시달리던 사람이 아프리카의 흙을 맨발로 밟아 어떤 기생충에 감염된 후 그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설과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로 세균의 발견과 청결의 중요성을 희석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외부를 깨끗이 소독하고 통제하면 완전한 건강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미생물이 존재하며, 그 중 일부는 우리 몸을 지탱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손과 몸과 그릇 등을 씻는 유다인들의 전통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삶의 지혜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계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겉모습보다는 그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더러운 환경과 세균 감염은 우리 육신을 병들게 하지만, 우리 삶을 병들게 하고 더럽히는 것은 우리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는 나쁜 생각들에서 나온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쉽게 다른 이를 탓하고, 세상을 탓하고, 우리의 처지를 탓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남의 탓,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발을 빼려하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서 나오고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변화할 수 없습니다.

위선은 남을 속이려다 나까지 속이는 일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길을 잃고 맙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솔직하게 내 안을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주님께 맡겨드릴 때,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은총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안에 나 대신 주님을 채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회개입니다.

- 예닮영성 심화길잡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