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권  타가스테에서 보낸 한 세월 (열 여섯 살 때, 369-370)

8. 공범을 강요하는 우정

스스러이 되새겨지는 일들에서 가엾던 내가 거둔 열매가
무엇이었습니까. 특히 도둑질, 딴 목적이 없이 오직 그 자체를
위하여 저질렀던 그 도둑질! 그것은 본디 '없음'이거늘
나는 가엾은 놈이 아니더이까.

그러나 그것도 나 혼자였으면 (그때의 내 마음을 짚어보면) 아니했을
것입니다. 혼자서는 절대 그런 짓을 안했을 것입니다.
벗과 사귀기를 좋아한 까닭에 그들과 함께한 노릇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도둑질 외에 딴 무엇을 사랑치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없음'을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본디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옵기에.

그렇다면 사실 무엇이니까? (이를 가르쳐 줄 이, 내 마음 비춰주고
 그 어둠을 가려내시는 그 분 이외에 누가 또 있습니까?) 도대체
 내 마음으로 하여금 캐고 따지고 헤아리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때에 내가 진정 그 과일이 좋아서 훔치고 실컷 먹어보려 했던들
웬만하면 그 죄를 혼자 넉넉 지었을 터이고 나 혼자 욕심을
채웠을 것이지 구태여 벗스런 맘들의 비벼댐에서 내 욕심이
간지러워 불붙지는 않았을 것이 아니옵니까. 그러나 나는
그 열매들에서 맛을 느끼지 못할만큼 맛은 바로 그 죄에 있었고,
죄는 함께 저지르던 자들과의 사귐이 시킨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