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심판의 모습을 일러주시는 이 성경구절은 언제나 우리를 작아지게 만듭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분명하게 일러주셨는데 우리는 정작 이것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느님의 뜻을 잘 실천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재미있는 것은 양쪽이 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이들은 분명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가장 작은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그 자장 작은 이들이 자신에게 곧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못한 이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사람들에게 주셨던 그대로의 답을 주십니다.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또는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가장 작은 이를 돕는 것과 그를 예수님처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어려울까요? 아마 그를 돕는 것보다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더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중 가장 작은 이를 도우려 한다면 우선 그를 예수님처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회사업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교회 안에서 베푸는 자선을 ‘카리타스’ -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즉, 자선과 사랑은 다른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 가르쳐주신 새 계명으로서의 사랑이 바로 이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사랑이 없는 자선은 - 남을 위해 불속에 뛰어든다고 해도 사랑이 없다면 -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기꺼이 도와야합니다.
  최근에 복지의 개념이 정치이슈가 되었습니다. 보편적 복지냐 부분적 복지냐, 가난하다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버릇이 되면 안된다. 무조건 도와줄 수는 없지 않느냐, 그건 포퓰리즘이다. 등등. 하지만 우선 저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돕는 일이 정치적 공세의 수단이 되는 일 자체가 우리 안의 가장 작은이를 존중하지 않고 나아가 모독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아픕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니까 자존심이 좀 상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흔히 생각합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생색을 내면서 한마디 충고 같은 것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게을렀을 수도 있습니다. 현명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들이 그런 처지에 놓였다 해도 그것이 그들을 덜 존중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재벌 이세나 삼세와의 사랑이야기로 이루어지는 요즘의 대부분 드라마를 보면 재벌집 자제나 사모님이 늘 입에 달고 사는 표현이 있습니다. “너 따위가 감히” 하고 “천박한 것”라는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그들 자신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역설적 표현이거니 생각했는데, 이제 하도 자주 듣다 보니 혹시 우리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정말로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천하게 생각하는 직종이나 낮은 직위에서 일한다고 사람이 천한 것은 아니며 그런 이유로 사람을 ‘따위’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혹시 우리 마음속에서도 사람을 그런 기준으로 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진정 사랑하셨습니다. 내려다보는 사랑이 아니라 똑같이 보고 존중하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작은 이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바로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분 앞에서 늘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심판하지 않고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면, 세상의 사랑처럼 고르고 판단하는 사랑이었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바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 신앙인에게는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이 선택사항일 수 없습니다. 그들이 곧 예수님과 똑같이 우리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당신 사랑을 받을만한 존재로 받아주셨듯이 말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예닮영성 심화과정 길잡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