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학교에서 학생들 영성지도를 하면서 겪었던 일입니다.
신학생들이 참 착합니다. 특히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면 3학년인데, 4년만 있으면 신부가 될 자신들을 의식하면서 의욕을 불태웁니다.
동시에 신학교에서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교육의 정도가 치밀하고 강합니다.
제가 이들과 영성면담을 한 달에 한번 이상 하는데, 면담은 주로 생활의 구체적인 것들이 기도 안에서 어떻게 정리가 되고 있는지가 그 내용입니다.
다음은 군 제대 후 복학한 학생이 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하느님! 저는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춘 훌륭한 신부가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적은 어느 정도 받아야 되고, 책은 어느 종류로 얼마나 읽어야 하고, 옆 신학생과의 관계는 이렇게 저렇게 맺어 나가겠습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이 기도의 분위기가 어떻게 느껴집니까?
왠지 모르게 기도가 메마르고 하느님의 그 어떤 분위기가 촉촉이 스며든 그 어떤 것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상당히 독백식이고 일방적인 자기 생각을 전한 거지요.
하느님과 나와 인격적인 부분인, 대화의 분위기가 전혀 보이지가않습니다.
왜 그럴까? 앞으로 이 학생에게는 각별한 하느님께 대한 체험이 요구됩니다.
자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주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부제품을 앞둔 어느 학생의 기도입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제성소를 스스로 재고해야 하는 그야말로 고통에 시달리는 학생과의 면담에서, 그가 들려준 기도의 내용입니다.
대충 이렇습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서 감실 앞에 앉았습니다. 지금까지 신학교 생활에서 겪었던 희, 노, 애, 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그 때 나를 신학교로 그렇게 부르셨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얼마 전부터 있었던 고통이 오히려 지금은 그 무엇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면서, 그동안 나를 이 순간까지 인도하셨던 주님을 기억하니까, 그 은혜와 자비에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그러면서 한참을 그냥 앉아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여느 때와는 달리 더 깊이 느껴지면서, 뭔가 자신감이 생기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십자가를 힘차게 져야 되겠구나! 하며 힘이 마음 밑에서부터 솟구칩니다.” 이 기도 어떻습니까?
앞으로도 이 학생은 그가 겪어야 되는 고통과 십자가를 통해서 더 깊이 나를 받아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이 학생이 다름 아닌 전자의 그 학생입니다. 3년 동안 이 신학생은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느끼고 인식하여 왔습니다.
이 새로운 인식과 느낌 체험은 그만큼 나를 향한 사랑 찬 하느님으로 늘 닥아 옵니다.
이쯤해서 우리는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느끼고 인식한 하느님이, 언제라도 나를 받아주시는 더 그윽하고도 더 깊으신 나의 하느님으로 인식되고 느껴지는, 즉 발전된 나의 하느님으로 형성되어지는 데에는, 항상 십자가가 동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당신 가까이 불러, 말씀을 주시는 순간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그때 하시는 말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8,34). 이에 앞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한다.“ (마르 9,35) 이에 앞서 집안에 들어오시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3) 이에 앞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십니다.
 
예수님께서 금언의 핵심인 십자가, 종, 꼴찌 등등을 이야기 할 때에는 제자들을 유독 당신 가까이 부르십니다.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고 종의 처지를 감수해야 할 상황이 나에게 닥쳤다면, 그 순간 주님께서는 나를 당신 가까이 부르는 때입니다. 그 주님께 나의 몸과 마음을 집중 시키십시오.
뭔가 이루어집니다!
꽉 쥐고 있던 내 두 손을 펴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신을 주님 앞에 놓기 시작할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으로 고통과 십자가를 풀어 갈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 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인도 하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길을 감지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부턴 분별하고 식별하면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짊어질 십자가는 짊어지면서 꿋꿋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주님을,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되면서 힘이 생깁니다.
사실 믿는 우리는 나를 향한 끝없는 주님의 인도와 용서, 사랑을 더 깊이깊이 깨달아 가는 사람입니다,
사랑과 용서 자체이신 주님을 더 밝히 더 깊이 깨닫고, 더 밝히 바라보는 여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과 용서 인도를 밝히 바라보고 느끼고 인식한 그만큼 나는 구원의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와 용서 사랑을 인식하고 느끼고 바라보는 그만큼, 나는 내가 처한 온갖 상황 즉 내가 처한 고통과 희열 나의 십자가 등등 모든 것이 나름대로 자리가 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 인도를 밝히 바라보고 느끼고 인식한 그만큼 나는 구원의 차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코린토 전서 13장 12절을 끝으로 이 강론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2015년2월14일, 후원회미사, 홍성만 미카엘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