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파릇파릇하고 화사한 푸루름이 선사하는 싱그러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싱그러움이 빠르게 떠나고 찾아오는 한창 여름에 짙어진 녹음은 너무 침침해서 제게는 너무 어둡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두움은 삶에 있어 두려움의 편린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올해는 폭염에 이은 태풍으로 그 위용이 더 해져서 그런지 어두운 녹색에 대한 불편함마저 마음 언저리에 남습니다.
유학을 떠나서 10년이 다 되서야 돌아왔습니다. 고국의 산천은 그 전에 여기 살 때는 마치 몰랐던 것처럼 아름답게 인식되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제가 여름의 그 짙은 녹음에서 느꼈던 두려움이나 불편함처럼 제 마음을 힘겹게 합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를 다이나믹(dynamic, 역동적) 하다고 표현하지만, 그 안에 삶이 더 힘겹고 각박해졌다는 느낌을 저 자신은 지우지 못합니다. 생활환경은 다이나믹하게 변해서 더 세련되어지고, 더 윤택해졌는지 몰라도 누려야 하는 삶의 질은 더 악화되었나 봅니다.
왜 삶은 외부적인 요소가 주는 안락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지? 유학시절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혼자 밥 먹는 시간에도 느끼지 못했던 착찹함이 유학시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윤택함을 누리면서 사는 요즘에 마음을 엄습합니다. 우리나라의 뉴스를 접하면서 느끼는 섬뜩함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고, 아픔을 달랠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해한다고 하는 변명이 너무 마음 아프게 다가옵니다.
시편저자는 139편에서 “주님!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제가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에 당신 계시고, 저승에 잠자리를 펴도 거기에 또한 계십니다. 제가 새벽놀의 날개를 달아 바다 맨 끝에 자리 잡는다 해도 거기에서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잡으십니다.”라고 노래하며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을 노래하건만, 우리는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하느님을 우리들의 마음에서 지우고 사는 것 같습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그대의 가슴 속에서 신과 의사소통을 하여라. 신의 불을 그대 안에 순수하게 보전해야 하고, 그대의 영혼은 그대 신성의 성전이다.”라고 가르친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이 더 절실해 지는 때입니다.
우리는 분명 삶을 살아내면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행복감을 그리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희망을 지우지 못하도록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영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바라보고, 그 고통을 어떻게 하느님과 함께 이겨가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선 삶에 임하면서 모든 것은 자기 계획이 아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인식할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내가 계획하지 않은 것을 하느님께서는 계획하고 계셨습니다.”하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당신의 삶을 사랑하신 에디트 슈타인 성녀처럼 말입니다. 이는 지금 당장에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궁극의 가치를 인식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인간이 지닌 양면성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라고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씀하시는 대로 하느님 안에 쉬기까지 인간은 누구나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화려함을 위해 더 짙은 어둠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내 관점으로 보아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삶의 자락이 그 사람에게는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할 뿐입니다.
세 번째로 고통은 당해야 하는 수동(passion)입니다. 그렇게 고통은 불현듯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능동을 이용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자를 하느님은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궁극의 가치는 멀리에만 있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현재의 자기에 대한 의미부여는 삶의 고통에서 희망을 바라보게 할 명약일 것입니다. 고통에서 희망을 보는 힘은 바로 현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의 품성이어야 하고, 이러한 품성이 영성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우리네 삶에 주어지는(passion) 역경을 하느님 안에서 길어 낼 수 있는 영적 힘으로 함께(com-) 나누며 위로하는 공감(compassion)의 삶으로 바꾸어 꾸리고, 이 삶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좀 더 행복에 다가설 수 있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후원회 연례피정, 2012년9월8일, 허석훈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