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이 사람들의 마음을 산으로 들로 유혹하는 때에 영성의 신선한 물을 마시러 모여든 여러분을 대하면서 마음이 넉넉해지고 뿌듯한 마음 가득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이런저런 직책을 많이 맡아서 일을 했습니다. 신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로마로 유학을 가서도 재로마 한인 신부 공동체에서 대표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직책들을 그만두었을 때의 허전함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보좌신부로 있을 때, 교리교사를 했던 청년들의 신앙상태들을 확인해보면서 저 자신에게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왜, 성당에서 이런저런 봉사 직을 맡아서 일을 할 때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런 직책에서 벗어나면 기본적인 신앙생활도 잘못하고 나중에는 냉담상태까지 가는 사람이 생길까?”
그러면서, 혹시 신앙생활을 하나의 일로 접근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에 매달리기 보다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다음의 네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과 하느님의 사람은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일을 할 때는 기쁘고 자신감이 있으며 만족을 하지만, 일이 없으면 신앙에서 멀어져 냉담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사람은 일이 있건 없건 늘 주님 안에 머물려고 노력하며, 사람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기도하고 기뻐하며 만족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길 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정보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는 다면, 사람들의 인정받기에 급급하지 않는 여유로움을 지닐 수 있습니다.

둘째, 하느님의 사람이 되려고 하면 주변 조건들을 바꿉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편리와 사람들과의 만남에 중심이던 생활조건을 기도와 전례 생활을 중심으로 주변 환경과 태도를 바꿉니다. 사람을 만나더라도 우선 미사를 드리고 그리고 기도를 한 후에 만나게 됩니다. 즉 시간을 기도시간 후로 미루고 양해를 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방의 구조를 바꿉니다. 텔레비전이 중심이었다면 십자가나 성화를 자기 주변에 배치합니다. 방의 배치를 통해서 본인의 생활의 중심이 무엇인지가 판가름 납니다. 어떤 수사님은 본인방에 ‘감사’라는 단어를 열 군데에 붙여놓고 늘 감사의 마음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담배를 끊으면 담배피던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술을 끊으면 술을 많이 마시던 사람들과 거리감이 생깁니다. 반면에 차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회식 후에도 제정신으로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들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즉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셋째, 하느님의 사람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7; 콜로 3,16 참조)이 무슨 의미인지 살면서 깨닫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일만 하는 사람은 평생가도 깨닫지 못하고 투정만 남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끊임없이’, ‘모든 일’이라는 말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기뻐할 수 있고, 가끔 기도할 수 있고, 내가 자랑할 만한 일에는 감사할 수 있어도 언제나, 끊임없이, 모든 일에는 그렇게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은 기쁨을 인간적이고 외적인 것에서만 찾지 않고 내적이고 영적이며 하느님에게서 온 것들에서 찾습니다. 인간적이고 외적인 것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식별하려고 노력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충고와 조언을 잘 들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함이란 ? 자신의 기분에 따라 기도를 많이 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늘 정한 시간에 주님을 찬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느낌이 없고 마음이 산란하더라도 정한 시간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조금 길거나 짧을 수는 있습니다. 감사는 자신에게 잘된 일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일에도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신 겁니다.

넷째, 하느님의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나중에라도 알아봅니다.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자신이 한 일이 잘되었는지 못되었는지를 사람들의 판단에만 의지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은 사람들의 판단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지를 먼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대부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밝혀집니다. 이런 것을 ‘아하! 체험’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건이나 그 시간에는 몰랐던 숨어있는 의미를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알게 되어 손뼉을 치며 “아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쁘고 좋은 일, 힘겹고 어려운 일, 고통스럽고 슬픈 일들이 나를 성숙시키는 하느님의 담금질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이겨나가면 언젠가는 “아하!”라고 소리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어려운 일들을 주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람이 그냥 놀고먹기를 원하시지 않으시고 그 사람이 더 성숙하여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그냥 어려움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조건도 하느님은 만들어 줍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 옛말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은총’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느님의 일에 매달려서 사람들의 시선과 인정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시길 기원합니다.

후원회 연례피정, 2012년10월13일, 윤종식 티모테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