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마르코 복음 12,1-8의 묵상입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확을 파고 탑을 세웁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그것을 내주고 멀리 떠납니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종 하나를 소작인들에게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을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주인은 다른 종을 또 보냅니다.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합니다. 주인은 또 다른 종을 보냅니다. 이번에는 그 종을 죽여 버립니다. 그래서 더 많은 종을 보냈으나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립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냅니다.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점점 포악해져 가는 소작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는 주인은 도대체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혹시 아들이 다치거나 죽음을 당하리라는 불길한 걱정이나 의심을 하지는 않았을까?
사실 사랑하는 아들을 그러한 소작인들에게 보내면서 의심과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버지로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은, 삐뚤어진 소작인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는 데에 온통 정신이 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 본심이 원래 착한 사람들이야! 틀림없이 내 아들을 보면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거야!’ 하면서, 그들의 양심을 살리는 데에 온통 마음이 빼앗겨 버린 아버지의 마음이었으리라 묵상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나를 죄에서 구출하고 살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나를 끝까지 믿음으로써 나의 양심이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포함해 우리를 향한 끝없는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드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입니다. 이것이 아드님께서 죽으신 이유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아드님의 생명을 불사하고 아드님을 보낸 이유, 그것은 세상을 향한, 우리를 향한, 나를 향한 어느 만큼까지가 더 이상 완전할 수 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헌데 나는 과연 그 사랑과 용서를 믿는가? 어떻습니까?
불행이도 우리는 그 용서와 사랑을 믿지 못합니다. 믿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되지가 않습니다. 완전한 사랑을 받아들인 다는 것을 힘겨워 합니다.
왜냐하면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가 과연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하며, 나의 식대로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재고 측정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를 존재론적으로, 내 삶의 근원에서부터 나를 받아주시고 용서하여 주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그 사랑의 하느님을 순간순간 음미 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내 존재의 바탕을, 내 존재 자체를 그냥 끌어안으시는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자주 되씹으셔야합니다.
내가 지은 잘못 때문에, 나를 질식시킬듯한 내적 혼란과 무질서로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자신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주님은 나를 애타게 기다리십니다.
당사자는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음을 압니다. 허나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째든 우리는 그 상황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는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나를 향한 조건 없는 용서와 사랑에 그냥 머무는 것입니다.
나를 향해 한없이 흐르는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 머물면서, 그 용서와 사랑을 음미하고 되새겨야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이 가장 기초적인 신앙의 행위인 기도인 것입니다.
매일 매일 이 기도에 충실할 때, 신앙의 생활화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9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후원회 연례피정, 2013년 4월 13일, 홍성만 미카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