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 하겠다. 신앙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발전한다. 인간을 바라보는 하느님과 하느님을 바라보는 인간 사이의 눈 맞춤이 있어야 신앙은 발생하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교류가 있어야 신앙은 불타오르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신앙의 정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상호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의 주도권을 암시한다. 하느님이 부르시고 인간이 응답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도권은 하느님이 쥐고 계시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신앙이고, 내 인생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인 것이다.
그렇다고 신앙이 하느님의 뜻과 이끄심에 대한 우리 인간의 수동적인 받아들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되,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물었다. “선생님, 율법 중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네 정신을 다하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해 너희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였다. 나를 돌보아 주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적극적으로 정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정신, 마음, 힘 등 전 존재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미국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종교교육학자인 토마스 그룸은 가톨릭 신앙은 동일하게 중요한 본질적 세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 세 가지 측면이란 첫째, 지성의 동의인 믿음(Head faith)이고, 둘째는 마음의 다가감인 하느님과의 내적 친밀함(Heart faith)이며, 셋째는 삶으로 행하는 실천(Hand faith)이다.
믿음은 신앙의 인식적 차원으로서 신앙의 진리들에 대한 지성적 동의를 말한다. 즉 우리가 어떤 신앙의 진리를 믿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란 사실 우리 이성의 작용을 통해 그 신앙의 진리를 알게 돼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지성의 동의인 것이다. 사실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의 진리들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믿음의 깊이도 더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성서(하느님의 말씀)와 교회의 전승(교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생활을 굳건히 하고 키워가기 위해서는 성서와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알아가고자 노력해야 한다.
신앙의 중요한 두 번째 측면인 하느님과의 내적인 친밀함이란 사랑이신 하느님을 마음으로 느끼고,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신앙이란 단순히 하느님을 믿고, 교회의 가르침을 이성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고, 마음으로 신뢰하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이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신앙의 신비적 차원은 바로 하느님과의 내적 교류를 통해 깨달아지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내적인 친밀함을 위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기도란 본질적으로 하느님께 마음을 두는 것,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친밀하게 일치하시기 위해서 세우신 은총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결코 주일 미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가능하다면, 평일 미사에도 참여하도록 힘쓰기 바란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진리에 대한 앎과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내는 실천은 가톨릭 신앙의 중요한 세 번째 요소이다. 신약 성서의 야고보서는 신앙에 있어서 실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실천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야고보 2:26). 행위의 신앙으로서 실천은 구체적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것(본당 활동/행사 참여, 구역모임), 교회의 복음 선교 사명에 참여하는 것 (삶의 자리에서의 전교, 가톨릭을 올바르게 알리는 것, 신앙을 증거하는 것), 십계명과 진복팔단에 바탕을 둔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마음의 가난, 겸손, 진실, 거룩한 모습),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가난한 이에 대한 우선적 선택,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돕는 것, 화해와 용서, 관용, 이해, 친절 등등) 등이다.
믿음, 하느님과의 내적인 친밀함, 그리고 실천은 통합되고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 통합되어야만 그 신앙은 내면화되고, 인격화된다. 즉 머리와 마음과 손발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작용하여야 하듯이, 신앙도 이성과 감정과 행동 안에 잘 스며들고 녹아나야 함께 작용하고, 자연스런 신앙의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이 신앙을 “내면화된 통합적 신앙”이라 부른다. 예수님께서 계명들 중에서 으뜸 계명이라 하신 “정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내면화된 통합적 신앙을 살아가는 가톨릭 신앙인만이 분명, 신앙 따로 삶 따로가 아니라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신앙인, 교회 공동체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또 사회에서 사랑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참 신앙인이 될 것이다.

후원회 특강, 2013년 6월 8일, 조영관 에릭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