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드러내시는 ‘나의 주님’

수품 39년에 접어든 저는,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군종, 신학교, 본당신부를 거쳐, 현재는 서울 대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 담당신부로서 2년이 흘렀습니다.
세월은 유수(流水)같다는 말을 하지만, 그동안 사제로서 저의 생활은 준은퇴시기로서, 내적 외적 변화를 겪으면서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2년 전, 본당사목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전전 긍긍했던 그때에 저에게 하나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인사이동을 몇 개월 앞두고, 성당에 앉아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리 저리 궁리를 하는데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신부님이 맡고 있는 지속적인 성체조배 단체로서, 이를 맡으면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헌데 몇 년 전, 그 신부님이 저에게 두 번이나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을 때, 그 청을 한마디로 거절을 한터라 저로서는 이를 회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생각과 궁리와 분심으로 성당에 앉아 있다가, 나의 사무실로 와서 우두커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바로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때 성체조배에 대해서 저에게 부탁을 했던, 그리고 거절을 당했던 그 신부님이셨습니다.
내용은 그 신부님이 내일 점심때 사제관에 와서 밥을 먹고 싶다는 것입니다.
뭔지 모르지만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 이튿날 사제관에서 식사를 끝내고 신부님이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는데,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신부님이 꼭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헌데 저한테 더 깊이 들어온 내용은, 어제 제가 성당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면 지속적인 성체조배 단체를, 잘 이끌고 갈 수 있을 텐데 하며 생각하고 궁리했던 그 내용을, 그대로 저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스러웠습니다.
어제 전화를 받은 그 순간도 물론 신비스러웠으나, 그 신부님이 나한테 건네는 이야기의 내용은 마치 사울과 하나니아스의 관계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아주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이러한 종류의 체험이 삶속에서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체험 하나 하나는, 제가 믿는 ‘주님’이라는 이름 속에 계속 스며들고 있었으며, 그 주님께서는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그만큼 나를 감싸 안으시며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사실은 드러낸다는 말보다는, 주님께서는 나를 늘 그렇게 인도하시는데, 그러하신 주님을 나는 그만큼 깨달아 간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렇게 내가 깨달은 주님은 그 누구가 아닌 바로 ‘나’만이 간직한 ‘나의 주님’이십니다.
수많은 사건을 겪으며 살아가는 인생살이 굽이굽이에서 이렇게 내가 깨달은 ‘나의 주님’은, 아니 나에게 드러내신 ‘나의 주님’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고 궁극적인 희망이십니다.
이렇게 나의 궁극적이고 힘이신 주님을 내 마음속 깊이 모시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는 하나로 모아집니다.
그런가 하면, 삶속에서 내가 겪어야 했던 기쁨과 고통 절망과 희망 등등이 고유한 자리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희망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믿는 우리에게 미래는 늘 불투명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늘 희망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적인 약점과 상처, 한계를 지니고 있는 본인으로서, 특히 죄스런 존재인 본인으로서는, 빛과 어두움이 모호하게 섞여 있는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녹치 않습니다.
나의 힘이시고 희망이신 주님이, 내가 당면한 그 어떤 부정적인 사건 앞에서는 때때로 희미해집니다.
어두움이 나를 지배합니다. 내안에 계신 주님이 의식되지 않습니다. 내안에서 주님이 빼앗겨 졌습니다.
“마태 9,15: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그 어떤 돌연한 사건으로 신랑이 빼앗겨 져서, 내안에서 주님이 의식되지 않을 때, 그때는 단식할 때입니다. 그때야말로 기도할 때입니다.
무겁지만 주님을 향해 내 몸과 마음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한 나에게 주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여 주십니다.

“마태 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요한 15,9: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후원회 특강, 2014년 2월 8일, 홍성만 미카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