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희생의 의미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우리가 모두 다 알 수는 없는 어떤 큰 흐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인간은 자기 욕심만을 생각하면서 그 흐름을 방해하려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해 왔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의 형들이 그랬고 예수님의 제자 유다가 그랬으며 독일의 나치즘이,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랬습니다.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고자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해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역시 그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희생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유다인들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부활을 당연히 예정된 일로만 생각하면, 예수님의 죽음도 당연하게 예정된 일이 되어버리고, 그러면 예수님을 죽인 일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과연,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이 나와 무슨 관계이며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요?

2차 세계대전 중,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유대인 2천명을 포함한 폴란드에서 온 난민들에게 수도원을 은신처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나치의 박해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문에 콜베 신부는 독일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됩니다. 1941년 7월 말, 죄수 중 한 사람이 수용소에서 사라진 일이 발생합니다. 수용소장은 죄수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탈옥한 죄수가 수용되어 있던 감방에서 열 명을 끌어내서 처형할 것을 명령합니다. 끌려나온 열 명 중에는 자기의 가족이 모두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폴란드 군인이 있었습니다. 콜베 신부는 그 군인 대신 자기가 죽겠다고 자원합니다. 수용소장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를 받아들였으며, 10명의 죄수들을 굶겨 죽이도록 지하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콜베 신부는 감옥 안에서 기도하며 같이 갇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3주가 지났지만 콜베 신부를 포함한 네 사람은 기도의 힘으로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결국 나치는 독약을 주사하여 그들을 모두 살해합니다. 1941년 8월 14일이었습니다. 콜베 신부의 시신은 성모 승천 대축일 날짜인 8월 15일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 한 화장장에서 소각되었습니다.

1971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콜베 신부를 증거자로서 복자로 시복하였으며,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콜베 신부를 순교자로 기록하고 그의 시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도대체 콜베 신부는 어떤 필연적인 원인에 의해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낯선 타인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희생해야 했을까요? 설령 콜베 신부가 폴란드 군인을 위해 대신 죽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가 그것 때문에 콜베 신부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역사 속에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같은 사람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돕는 것은 선한 일이고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며 종교가 지향하는 덕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맹자도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을 강조했고 석가는 자비를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들입니다.

절대적인 선은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으므로, 모든 상대적이고도 인간적인 선은 하느님의 완전한 선, 하느님의 신성한 의지를 따를 때에만 선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기꺼이 스스로 제한하고 희생하려는 착한 마음씨 또한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하게 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판단을 내리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이 무엇인지 안다고 해서 선을 행하는 것이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선한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선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선(善)입니다. 사랑입니다. 선과 사랑은 자기희생을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본성이며 악과 고통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그것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고 희망입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루카 10,29)” 유다인 율법교사가 묻습니다.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져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사제와 레위 사람이 그를 보았지만 모두 못 본 체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이 상처를 치료해주고 묵을 여관까지 마련해 주었다.” 예수님의 논지는 명쾌합니다. 유대인이 그토록 증오하고 멸시하는 그 사마리아인이 자기희생이라는 선행을 통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의 죽음을 통하여, 또한 사마리아 사람의 선행을 통하여 자기희생이 지니는 의미를 좀 더 현실적으로 깨닫고 하느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후원회 특강, 2014년 4월 12일, 조승환 사도요한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