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 체험, 그리스도인들의 보편 성소


지난 20세기에는 신비 체험이 크리스천들의 보편 성소인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으며, 그렇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또한 이를 간접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교회 헌장」 제39항을 보면,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교계에 소속된 사람이든 교계의 사목을 받는 사람이든 다 거룩함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선언이 나오고, 제40항에는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이라고 밝혀져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는 “거룩함’이나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 및 “사랑의 완덕”은 신비 체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규정하는 신비 체험의 개념과 일치하는 표현으로, 이는 공의회 교부들이 신비 체험의 보편성을 인정하였다는 근거가 됩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교의들의 핵심을 보면, 모두 신비로 되어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삼위일체 신비, 창조의 신비, 구원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육화의 신비, 공현의 신비, 십자가의 신비, 죽음의 신비, 부활의 신비, 승천의 신비, 성령 강림의 신비), 계시와 믿음의 신비, 은총의 신비, 교회의 신비, 사랑의 신비, 성체의 신비, 마리아의 신비 등이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신앙의 신비여” 라고 외치며 매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신앙의 신비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비를 체험하지 않으면, 엄밀한 의미에서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이런 관점에서 신비 체험은 크리스천 체험과 크리스천 영적 체험의 핵심과 본질에 자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의 신비박사라 불리는 칼 라너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신비 체험을 하도록 창조하였다는 사실을 형이상학적, 기초신학적, 교의신학적 관점에서 논증해 놓았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신비 체험을 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사례로 들어 이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고 남윤철 아우구스티노, 그는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담임선생님입니다. 생존 학생들에 따르면, 남 선생님은 선체(船體)가 급격히 기울어진 16일 오전 10시쯤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어 얼마든지 먼저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 선생님은 학생들의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빨리 빠져 나가라’고 외쳤습니다. 구조된 학생에 의하면 ‘안내 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었는데, 방 안에 물이 차오르자 선생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피시켰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은 ‘물이 허리쯤까지 차올랐는데도 우리를 챙기고 있는 담임선생님을 봤다’면서 ‘물이 키를 넘어서면서 정신없이 빠져나오고 나서 돌아보니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사랑과 헌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떠난 선생님입니다”(박유진 신부, 한국 가톨릭 문화원 원장).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 세월호의 비극 속에서 제자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한 선생님에 대한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눈물 겨운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가슴 뭉클한 이 감동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는 가슴 안에 살아 있는 사랑으로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슴 뭉클한 사랑은 비가시적입니다. 분명하게 우리 가슴으로 뭉클한 느낌을 받지만, 이 뭉클함은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서 우리 가슴을 해부해도 어디에서 어떻게 느꼈는지 물리적으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가슴 뭉클한 사랑은 비물질적입니다. 물리적으로 검출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가슴 뭉클한 사랑은 비범주적입니다. 그러기에 질량, 크기, 부피, 모양, 색깔과 같은 범주들로 계량화 할 수 없습니다. 가슴 뭉클한 사랑은 시간과 공간과 역사를 초월합니다. 따라서 가슴 뭉클한 사랑은 초자연적입니다.
이상과 같이 가슴 뭉클한 사랑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이며 비범주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특성을 지니며, 육체적 감각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없고 과학적, 의학적 차원에서 증명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있음을 체험적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신학에서는 “영”(spiritus)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 4장 24절에서는 하느님을 영이라고 표현합니다. 가슴 뭉클한 사랑은 영이라는 논리입니다. 한편, 가슴 뭉클한 사랑은 아름답고 좋고 참된 사랑입니다. 이처럼 동시적으로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것을 신학적으로 “거룩하다”(sanctus)고 규정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슴 뭉클한 사랑은 영이면서 동시에 거룩하기에, ‘거룩한 영’(spiritus sanctus), 즉 ‘성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두고, 요한 1서는 4장 8절과 16절에서 하느님을 사랑이라고 규정합니다. 결론적으로, 가슴 뭉클한 사랑은 거룩한 영으로서 성령이신 하느님이라고 말할 수 있고, 가슴 뭉클함, 사랑, 영, 거룩함, 거룩한 영, 성령, 하느님을 한마디로 신비라 규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슴 뭉클한 사랑 체험은 성령 체험이고, 하느님 체험이며, 신비 체험인 것입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상과 같은 가슴 뭉클한 사랑 체험을 합니다. 사랑을 체험한다는 것은 사랑을 느끼고 인식하며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을 느끼고 인식하며 깨닫는 것, 다시 말해 체험하는 것을 다른 신학적인 용어로 관상이라고 합니다. 관상이란 비가시적인 신비를 영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신비 체험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신비를 관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 세기에 길고도 치열하게 전개된 신학적 토론을 통하여 밝혀진 신비 체험의 보편성입니다.
이 세상에 사랑의 신비를 바라보는 것같이 행복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느님 신비에 대한 관상, 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고 추구해야 하는 최고의 보석으로서, 우리가 마직막으로 돌아가야 할 영원한 휴식처, 영원한 고향이라 믿습니다.

2014년5월10일, 연례피정, 고계영 바오로 신부님,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