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2티모 4,6-8)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이른바 ‘바오로 사도의 영적 유언’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인 2티모 4,6-18의 한 부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편지를 쓸 때에 로마의 어느 감옥에 갇혀 계십니다(2티모 1,17 참조). 티모테오 2서는, 바오로 사도가 이제 언제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도로서의 그의 인생 여정의 충실한 동료이자 아들과 같은 티모테오에게 유언과 같은 권고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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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께서 하신 위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로마 시대에 있었던 올림픽 마라톤의 시상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형 경기장 안에서 관중이 모두 잘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왕이라든가 또는 고위 인사가 앉아 있다가, 우승한 사람들을 위로 불러 올려 월계관 또는 올리브관을 수상자 머리위에 씌워주는 시상식 장면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는 경건한 유다인 가정에 태어나셨지만, 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지낸 곳은 헬레니즘 문화가 찬란히 꽃피어 있던 타르수스라는 대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도시 안에 있던 원형 경기장에서 벌어지던 여러 경기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참조: 1코린 9,24-27; 필리 3,12.14. 상상해 봅시다.
저는 위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읽게 되면, 1992년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과정이 떠오릅니다. 42킬로미터가 넘는 그 먼 거리를 8월의 뙤약볕 아래, 다른 선수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보통 사람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이 전력 질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특히 마라톤 막바지에는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하여’ 달리던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어 하던 그의 발걸음이 갑자기 힘차게 변했습니다. 멀리 몬주익 메인 스타디움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몬주익 주경기장에서 군중들의 환호 속에 금메달을 받는 자신의 모습이 이미 그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 이 희망이 그를 쓰러지지 않고 더욱 힘차게 달리게 했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의 말씀을 통해 티모테오에게 당신이 달려온 ‘인생 마라톤’에 대하여, 끝까지 성공적으로 달려왔노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희망을 품고 인내하며 열심히 달리라고 권고하십니다.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훌륭하게 완주한 다음, 하느님께 “의로움의 화관[올리브관/월계관]”을 상으로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올림픽 마라톤’과 ‘인생 마라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상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지만, 인생 마라톤의 시상식이 있는 하느님 나라에서는 상을 받는 사람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인생 마라톤을 잘 달려 하느님께 상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확고한 목표를 가지는 것’과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인내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비추어 제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토록 많은 역경을 거치면서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도직의 인생길을) 달릴 수 있던 것은, 그를 향한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9)

바오로 사도의 놀라운 노력도 중요했겠습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의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그렇게 노력할 수 있도록, 성령을 통해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 대한 믿음이 중요했습니다. 오늘 미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바로 이 믿음, “한결같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불굴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끊임없는 사랑 때문입니다(특히 로마 8,35 참조).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나약함 때문에 별것도 아닌 것으로도 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십니다.”(2티모 2,13). 루카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서 작은 아들(탕자)은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고 뛰쳐나가 아버지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방탕하게 살며 가산을 탕진하였습니다. 즉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아들이 당신께 돌아와 ‘살아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아버지께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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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12,38-44. ‘명예욕과 재물욕이 뒤섞인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가난한 과부의 작은 동전 두 닢의 정성’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2,38-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 12,43)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이 사제인 저에게 “찌르듯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오늘 복음이 일차적으로 지도층 인사들을 향한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은 교회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을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자신들이 혹시라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심하게 비판받는 율법학자들의 태도에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철저하게 자기 성찰을 하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회 안에서 가난한 과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무시당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하며, 그들이 교회를 따뜻한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각별히 배려하라고 깨우쳐 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들의 위선’에 관한 예수님의 호된 질책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 신앙인들에게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유혹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돈, 재물, 권한, 지식 등)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겸손하게 사용하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이는 힘으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은 가지고 있던 율법에 관한 지식’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더욱 겸손하게 받들기는커녕, 오히려 교만하게 되어 그 지식을 자기 명예를 드러내고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겸손의 중요성에 관하여 다음 구절들을 더 참조하십시오. 야고 4,6과 1베드 5,5에도 인용된 잠언 3,34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시편 51,19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또한 마태 11,29에 의하면 예수 성심의 특성은 ‘온유와 겸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가르침의 핵심도 겸손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참조: 마르 10,42-45; 요한 13,1-17).

후원회 미사 강론, 2012년6월9일, 김영남 다미아노 신부